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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45%가 한국계인 어느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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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1/10 크기이며 현재는 3000명이 거주하는 관광지이자 미국령인 사이판의 작은 섬 '티니언'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자연환경 보존이 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섬은 원래 독일령이었으나 1차 대전 독일이 패망하면서 통치권이 일본으로 넘어간다.

이후 1920년 국제연맹에서 정식으로 인정되면서 2차대전 미군이 점령하기 전까지 일본령이된다.

 

일본은 192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하는데 

난요코하추 주식회사가 맡아 설탕과 커피, 면화를 생산했다.

당시 설탕의 생산량은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으며 

이후 가다랭이 공장도 세워 가다랭이 잡이도 성업하게된다.

물론, 이 시기 동원된 노동자들 대부분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되어 끌려온 조선인.

 

티니안 섬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조선인과 원주민들) 

 

그리고 1941년부터 시작된 태평양전쟁으로 티니언 섬은 일본군에게 중요한 기지 중 한 곳이었다.

미군이 티니언 섬을 점령하기 전까지 인구는 대락적으로 약 16,000명이었는데 

대부분이 일본군이었으며, 그 중 약 5,800명이 강제징용된 조선인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심화된 직후에 일본군이 약 8,500이 주둔하기도 했다.

 

미군은 1944년 7월, 이 섬의 전략적 가치를 확인하고 섬을 점령하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는 티니언 국제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는 미 공군 비행장을 건설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을 보관하던 시설도 티니언 섬에 위치해있다.

 

타니안 해변으로 상륙하는 미군들 

 

미군이 티니언 섬을 점령하기 시작한 이때 일본은 후퇴하면서 미군에 잡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일본군(조선인들)과 노동자들(조선인+원주민)의 자살을 유도하거나 학살을 하는 만행과 함께 

남양군도의 한 무인도에 조선인들을 버려 모두 굶겨 죽이기까지 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섬의 원주민들인 차모로족들이 징용자들의 생존을 도왔다.

 

차모로족 원주민들 또한 티니언 섬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노동은 물론 군역에도 징용되어 

얼마되지 않던 이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조선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이로인해 이 아름다운 섬은 일본이 패망하고도 한동안 '지옥의 섬'으로 불려졌다.

 

미군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과 원주민들을 암매장하던 암매장터를 찾아냈으며 

이곳에서 조선인 약 5000구의 시신이 발굴했고, 이들은 죽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와 

망향휴게소 건너 편인 망향의 동산에 묻혔다.

 

또한 암매장터에는 그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세워졌고 

아직도 티니언 섬 곳곳에는 전쟁의 참상이 남아 있다.

 

강제징용으로 죽은 조선인들을 위로하는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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