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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여의도 광장 질주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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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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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용제

1991년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이다. 범인은 20대 시각장애인 김용제(1970 ~ 1997. 12. 30.). 이 사람의 일대기는 책으로도 나왔다. <마지막 사형수>로 교도소 안에서 조성애 쟌 마르코 수녀[2]와 나눈 편지를 바탕으로 제작된 책이다.



2. 경위



김용제는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3]를 가지고 있었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갔고, 몇 년 후에 아버지마저 농약으로 자살했다. 그후 시각장애와 소극적인 성격으로 집단따돌림을 당했고, 결국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그러던 중 칼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도 예비 음모'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3개월 복역했다.[4] 이후 서울과 부산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갔지만 시각장애로 인해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없었고 급여 또한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결국 김용제는 마지막으로 다니던 화곡동의 양말 공장에서 해고된 뒤 세상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다.



3. 경과

김용제는 양말 공장을 다니던 시절 사장의 기아 프라이드 열쇠를 복사해서 가지고 다녔고, 그 차를 몰아 복수할 생각을 했다. 결국 1991년 10월 19일, 차를 몰고 여의도 KBS 앞에 나타나 마구 질주했다. 처음으로 당시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지현일 군(12)과 유치원생 윤신재 군(6)을 치었고, 두 아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뒤에도 계속 질주를 하여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21명이 부상을 입었고, 200m를 더 달리다 자전거 보관함을 들이받은 뒤 차가 멈추었다. 그 뒤 시민들에게 붙잡혔을 때 뿌리치고 여중생 김병춘 양(13, 당시 신도림중학교 1학년)을 인질로 잡았으나 시각장애로 인해 제대로 대치하지 못했고, 이윽고 시민들에게 제압당했다.



4. 결과



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 대구의 나이트클럽에서 방화로 인해 16명이 사망하는 거성관 방화 사건이 일어난지라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김용제는 11월 19일 사형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제기하지만 전부 기각됐고, 1992년 8월 18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1997년 12월 30일 다른 사형수 22명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5]



여기서 그에게 치여 즉사한 당시 유치원생 윤신재 군의 할머니인 서윤범 할머니는 이런 사정을 듣고 되려 범인을 이해한다며 눈물을 흘리며 탄원서를 썼으며, 기도까지 해 주었다. 당시 기도 내용이 얼마전 방송에서 나왔다. "지금도 용제가 정말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마지막 작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주신다면..." 사형 집행 당일에도 찾아왔다고 한다. 그가 사형을 당하기 전에 가톨릭에 귀의하여서인지 이 자리에 온 신부가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썼는데, 그는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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