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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한국인인 내가 알고보니, 베트남 황제의 직계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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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대월(안남국, 베트남) 이씨 왕조의 건평왕(建平王) 이용상이 바닷가에 도착합니다.

당시 베트남은 대월 이씨 왕조의 신하였던 진씨가 권력을 잡은 뒤
황실의 마지막 어린 공주를 황위에 앉히고(동아시아의 몇 안되는 여제입니다.)
자신의 일족과 결혼시켜여 양위받는 등 무리수를 두어 가며 황위찬탈에 나서고
조선의 이성계가  그랬듯이 베트남 이씨황족을 모조리 잡아죽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황자였던 이용상만 간신히 도망쳐서 먼 고려까지 온겁니다.
보트피플의 원조지요.

고려도 그때는 상당히 맛이 가있는 상태였는데, 이용상은 같이 온 부하들을 이끌고 황해도 바닷가에서
외적(아마 왜구로 추정)들을 격퇴하고 백성들을 구하는 공을 세우고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정착합니다.
고려 왕 왈 , '우리라고 어찌 나라가 망할일이 없겠는가. 망국의 왕자를 잘 대접하라'
몽고의 침입 때도 큰 공을 세워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져 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됩니다.
그는 한국에서 잘 살았지만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며 망향대를 쌓고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어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우리나라 족보책의 시조 유래 정도로 남나 했는데
그 뒤로 700여 년이 흘러 고려도 망하고 조선도 망하고 대한민국이 세워진 뒤.....일입니다.

사실 이씨 왕조는 베트남의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통일신라 ?
통일왕조를 이루었고 외세의 침입을 막고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성립된 시대였는데
진씨가 찬탈한 이후로는 왕조가 계속 바뀌고 끝없이 혼란이 거듭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엔 언제나 이씨 왕조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공산당 정권인데도, 이씨 왕조에 대한 제사를 끝까지 이어갔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직계후손이 없어서 하노이 시장이 대신 제사를 지낼 정도로 추억과 아쉬움만 깊어져만 갔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마지막 이씨 황자가 고려로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해졌기 때문에
외교관들이 꼭 한국과 정식수교가 되면 황손을 찾아보라는 부탁까지 받았을 정도랍니다.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정부 모두 남한 북한 모두와 접촉하며 실제로 이들과 만남을 주선하였고

마침내 1990년대에 화산이씨 26대손 이창근씨가 베트남을 방문합니다.
심지어 이 때 공산당 총비서와 정부 3부요인이 모두 공항으로 마중나왔다고 합니다.
베트남 언론은 대서특필하며 800년만에 끊긴 이씨 황통이 부활하였다고 환영합니다.

그 이후로 베트남에선 이를 소재로 오페라까지 만들어졌으며....
화산 이씨의 자손들은 모두 베트남인임을 인정받고, 베트남내 토지나 사업 취득에 제한을 두지 않는 특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해마다 건국 기념일마다 화산 이씨 종친회를 초청한다고 하구요...
이창근씨는 아예 베트남에 귀화하여 이씨 왕조의 장손으로서 대접받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이창근씨는 옛 이씨 황실의 종묘를 방문하여 제사를 지냈는데
마침 그 때 옛 우물에서 이씨 왕조에서 쓰던 향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동네 촌로들은 '숲이 없어지고, 강이 마르는 그날 이씨 왕조가 돌아올것이다' 라고 한
찬탈자 진씨의 말이 사실이 되었다고 감격했다고 합니다.
(물론 진씨는 이씨 황족이 절대로 못돌아온다는 늬앙스로 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그 숲이 사라지고, 강도 농토로 변해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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