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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짜장면.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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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번이고 눈을 비벼 확인했다.
 
신이시여. 이게 정녕 실화란 말입니까?
 
내가 사는 원룸은 완벽한 남향이다. 동서북 어느쪽으로도 창문따위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세상을 보려면 남쪽 베란다의 문을 열어야만 하는데, 그 앞에는 또다른 원룸이 있고
그 원룸의 창문들은 애처롭게도 북향이다. 남향과 북향이 마주보는 사이의 공간 아래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나는 그 공간을 판문점 내지는 비무장지대라고 정의한다.
 
사실 마주보는 앞집과 우리집 간에는 별 왕래도 없었지만 소 닭보듯 닭 소보듯 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앞집과 우리집이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가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길로 들어선 이유를 추정하자면...
어느날 내가 빨래를 널기 위해 나갔고, 앞집과 눈이 마주쳤다. 그게 다다. 문제는 내가 상의탈의 중이였다는 거고
본의아니게 내 핑젖을 보였다는 것 뿐이다.
 
황급해진 나는 중요부위(?)를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 때 나를 금수처럼 바라보던 앞집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앞집은 신문지로 북향창문을 도배하고 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둠의 자식일거라고.
 
 
아무튼 그 사건 이후 냉전체제를 계속하고 있는 북향창문의 그 원룸건물과의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도록 하고,
 
 
 
 
 
 
오늘의 이야기는 병신과 짜장면.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새벽 다섯시 반에 기상한다. 그런데 아침에 뉴스도 보고 밥도 먹고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하려다보니 취침시각이 앞당겨지고 기상시각이 그만큼 앞당겨지는 괴현상이 발생해 요새는 새벽 네시에 기상하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창문을 열고 침구류를 털고 방청소를 하는 것인데, 그날도 똑같이 그러기로 하고
창문을 여는 순간 태어나서 몇 번 보지 못했던 설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농담아니고, 비무장지대에 있는 차량에 쌓인 눈이 어림잡아도 10센치는 되어 보였다. 그런데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좌뇌와 우뇌가 절규한다.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배송직이다. 이런 날은 쉬면 장땡이라고 생각할 지는 몰라도, 쉬게 되면
그 다음날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기상악화로 쉬게 되면 고스란히
 
그날물량+다음날물량x언제 또 날씨가 나빠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발주=? 가 추가되어 지옥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뉴스는 더 가관이였다.
 
 
남부지방 대설주의보
 
 
 
아 얘네가 자막을 잘못썼구나...
추풍령이 5센치인데 왜 대구경북경남이 10센치인가?
파주가 0.4도 인데 왜 이동네가 0도인가.
 
자전축이 틀어졌던지, 미국에서 추진하던 기상변이장치를 우리나라에서 개발했다던지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아무튼 먹이를 구하는 어미펭귄마냥 뒤뚱뒤뚱 걸어 약 한시간만에 회사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큰 도로의 눈은
점점 녹기 시작했고 2.5톤 차를 모는 나는 슬립스트립과 드리프트를 본의아니게 구사하며 무사히 배송을 마칠 수 있었다.
 
 
현재시간 오후 열두시 이십분.
 
 
...혹시나 해서 이야기하는거지만 최대시속 40키로로 달려 마친 일의 속도이다.
눈만 아니였으면 오전 열시에도 끝날 수 있는 일이였다.
 
 
집에 오니 한시. 우리회사는 워라벨이 괴에에에에ㅔ엥ㅇ장히 좋은편이다.
일이 끝나면 퇴근이 가능하다. 알바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알바는 아니다. 중소기업이긴 해도 정규직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8시간~10시간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을 농축시켜서 3~4시간만에 끝내야 한다. 피로도는 똑같다.
하지만 그런 워라벨의 홍수속에서도 평균 집에 오면 세네시는 되는데, 눈도 오고 하니 주문이 많이 없어서 아주 다행이였다.
 
 
아무튼 그렇게 일찍 끝나긴 했어도 눈도 오고 비도 오고 날씨가 국정농단마냥 활개를 치고 있을 때 나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날은 짜장면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우리동네는 두그릇이상 배달이 기본원칙이다. 소비자에 대한 권리 뭐 그런건 내가 소비자인데 나도 잘 모르겠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겠지 들! 그렇다고 짬짜를 시켜서 혼자 먹기엔 내 위가 너무 연약하고, 놔뒀다가 먹자니 면이 가래떡마냥 불어
냉장고에서 촉수물을 찍고있을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Q. 탕수육을 같이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A. 제가 탕수육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그 비바람을 뚫고 직접 먹으러 가야했다.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 직선거리 80미터 지점에 산*궁 이라는 짜장면집이 있다.
일단 그곳에서 짜장면 곱배기를 먹는다. 그리고 어 맛있다(실제로 맛있다)를 중얼거린 뒤, '여기 짬뽕밥 하나 포장해주세요!'
해서 다음날 아침에 먹을 짬뽕국물을 포장해 오는 것이다. 그러면 점심과 다음날 아침을 단돈 육천원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수면바지에 반팔 한장, 긴팔 한장, 깔깔이 한장, 마지막으로 파카를 입고 우산을 든 채 보부도 당당하게 산*궁을 향해 걸어갔다.
모진 비바람을 헤치며 집을 뛰쳐나온 포메라니안의 공격을 물리치고 나는 산*궁 앞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나는 우산을 집어던진 채
조용히 문앞을 바라봤다.
 
 
 
 
 
 
 
 
 
 
 
 
 
 
 
 
 
 
 
 
<금일 눈이 많이와서 쉽니다~^^>
 
 
 
 
저 문장말미에 요망한 물결무늬를 쓴 사람을 산채로 잡아다 물도 안주고 삼일내내 프링글스만 먹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어폰에서 흐르는 이은하의 '봄비' 가 더욱 애처롭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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