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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만취한 그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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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언제나 그놈의 술이 문제다.
 
 
오랜만에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 기분 좋게 만취하도록 얻어먹은 어느 날이었다. 
치사량을 넘긴 다리가 힘이 풀려 비틀거렸지만 쌀쌀한 날씨에 정신만은 또렷했다. 

차는 예전에 끊겼고, 당시는 택시 같은 고급운송수단을 탈 수 있는 재력가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작정 집이 있는 동쪽을 향해 걷다 골목 구석에 한 허여멀건 한 물체를 발견했다. 
 
“괜찮아요?”
 
허여멀건 한 그것은 밝은 색의 자켓과 블라우스에 연분홍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였고, 딱 보기에도 뭘 먹었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건더기들을 뱉어낸 그녀가 고개를 들어 대답한다.
 
“웅, 괜찮아우웨엑”
 
괜찮다고 했으니 알아서 잘 살도록 버려놓고 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아마도 예전에 만난, 술만 마시면 토하던 누군가와 닮아서 그랬으리라
토사물이 묻은 손을 자꾸 내 옷에 비비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묻는다.
 
“집이 어디에요?”
 
“모란...”
 
“택시 잡아 줄게요.”

“안 타”
 
“여기 새벽에 위험해요. 아니면 저기 큰길에라도...”
 
“야 개색..이야! 너 나 간간할라 그러는 맞지? 간간범이지?”
 
강과 간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그녀의 꼬부라진 발음을 듣는 순간 도망치고 싶어졌지만,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아는데 버리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억지로 그녀를 부축하며 대로로 나섰다.
 
“잔깐만 나 쉬”
 
“어어 저기 잠깐만 저기... 어어”

느닷없이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치마를 걷어 올린 그녀가 팬티스타킹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는 뭐가 걸렸는지 계속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막 돌아보려는 순간 ‘솨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샌달 쪽으로 거품 섞인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말에 정장차림으로 만취한 그녀의 사정을 상상하며 입에 문 담배가 반쯤 타들어 갔을 때 쯤, 그녀가 일어서더니 손에 들고 있던 팬티스타킹과 속옷을 오줌물 위에 던져버린다. 
 
“그건 왜 버려요?”
 
머리를 긁적이던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오줌... 묻었져...”
  
이어 그녀는 쭈그려 앉아 얼굴을 감싼 채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옆에 멀뚱히 서서 담배만 피워 올리는 가운데, 아까 집에 빨리 가야한다는 친구를 붙잡고 마지막에 퍼붓다시피 한 술이 확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만 하고 가요”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그녀가 어느새 차가운 보도블럭 위에 누워 끅끅대고 있었다. 

“아씨... 저기요! 일어나요!” 

흐느끼며 웅얼웅얼 대는 그녀를 일으키려 온힘을 다 써봤지만, 축 늘어진 사람은 생각 외로 엄청 무거웠다.  
나도 죽겠는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른 취객들이 우릴 보며 연신 히죽거리는 얼굴로 지나는 판에 그녀를 여기 버려놓고 갈 수도 없었다. 
결국 그녀를 들쳐 업고 피맛골 골목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을 지나칠 때마다 “이 갯새끼가 나 간간할라고 해요!” 라며 알아듣지 힘든 발음으로 외쳐댔지만, 다행히 다들 만취했거나 취객에 면역이 된 사람들인지라 그저 그녀를 정신나간년 보듯 할 뿐이었다. 
 
몇 번을 헛걸음한 끝에 만 오천 원짜리 허름한 여인숙에 그녀를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너무 많은 술을 마셨고,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해 세세한 기억은 나질 않는다. 
녹슨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도 토사물 묻은 옷을 빨아보려다 몇 번이고 차가운 화장실 바닥 졸다 깨다 하던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아침에 팬티부터 사다줘야겠네' 라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다음 날
뜨거운 숨소리와 함께 얼굴이며 목덜미에 뭔가 질척한 것이 와 닿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여기가 어딘지,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뒤통수가 찢어지는 듯한 숙취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질끈 감은 눈을 서서히 떠보니 웬 처음 보는 개 한마리가 내 얼굴을 핥고 있다.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어젯밤에 눕혀놓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씨발’이란 생각과 함께 황급히 지갑부터 찾아보니 다행스럽게도 돈은 그대로 있다.
계속 들러붙는 커다란 흰색 개를 밀쳐내며 카운터로 가서 쪽문을 두들겼다.
 
“아줌마, 어제 나랑 같이 온 여자 언제 갔어요?”
 
주인아줌마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 여자여! 동물 안 된다는데도 쌩난리를 치면서 개 안고 들어왔음서!”
 
 
 
 


 
술을 줄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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